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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2022년 1월 6일(목)

가정예배
작성자
김 재형
작성일
2022-01-05 17:12
조회
1094
제목: 빈 들(눅 3:1-6) 찬송 410(새 310)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하여 요한이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임하는데 왜 빈들입니까?
성전과 율법과 제사장이 있는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고 빈들에 있는 요한에게 임하는 것입니까?
요한은 제사장의 아들이기에 예루살렘 성전 주변에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빈들에 나와서 살았습니다.
이런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은 기존의 정치나 종교를 전혀 인정하지 아니하겠다는 것입니다.

빈들에서 새롭게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와서 광야를 지나는 것처럼 새롭게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기존의 그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율법지킴과 종교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모든 것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누가가 증거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낮고 비천한 자리에 오신 그 의미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 해도 세상의 힘과 권력의 허망함에 대해서 알지 못하게 됩니다.

요한이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한 것은 어떤 사람도 죄 사함의 회개가 없이는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의 회개 앞에서는 민족이나 신분 등 높고 낮음의 차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5절)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해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의미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가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야 합니다.
자기 의들이 다 무너지고 벌거벗겨져야 합니다.
빈들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는지 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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