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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2020년 6월 29일(월) - 7월 4일(토)

작성자
김 재형
작성일
2020-06-28 16:50
조회
1111
가정예배 2020년 6월 29일(월)

제목: 우리 편(시 124:1-8) 찬송 448(새 447)

다윗이 하나님을 ‘우리 편’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배타적인 종교로 비판을 받는 것도 하나님을 기독교인만의 하나님으로 말하면서 복 주시는 분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하나님은 내 편, 네 편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정도로 불신자도 얼마든지 잘되고 신자에게도 고난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떠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우리 편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2-6절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일어날 때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하시고 지켜 주신 것을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셔서 하신 일로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3절에서는 여호와가 우리 편이 아니었다면 이스라엘이 산채로 삼켰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여호와가 우리 편이 되신 증거로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부강한 나라가 되었는가의 여부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여호와의 도우심과 지키심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고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수많은 적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이스라엘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도우심이라는 것입니다(8절).

세상은 악한 영에 의해 장악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함으로 사망으로 끌어가려는 악한 세력이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그 세력을 이기고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성도는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야 말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자신의 믿음이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키심으로만 가능한 것임을 아는 이들이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했다면 우리를 삼켰을 것이다’라는 고백과 함께 하나님을 노래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년 6월 30일(화)

제목: 하나님의 지키심(시 125:1-5) 찬송 455(새 370)

1,2절을 보면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 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시온 산에는 성전이 있고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나와 하나님께 제사함으로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시온 산은 이스라엘에게는 곧 구원을 뜻합니다.

그렇게 보면 시온 산이 영원하다는 것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의 구원이 흔들리지 않고 영원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고 2절의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영원까지 두르신다는 것도 세상에서의 안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문제를 두고 한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악인의 권세가 의인의 업(땅)에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악인의 권세’는 ‘의인으로 죄악에 손을 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의인이 악인의 권세에 의해 죄악에 손을 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자기 백성을 영원까지 두르시는 하나님의 지키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의지하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성도는 신앙의 본질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이 육적인 것으로 향해 있는지 영적인 것으로 향해 있는지를 먼저 분명히 판단해야 합니다.

또한 성도는 신앙의 눈으로 세상과 자신을 바라봐야 합니다.
세상을 신앙의 눈으로 보면 진리와는 상관없이 자기 즐거움에 묻혀 살아가는 현실을 악인의 권세에 붙들려 있는 모습으로 보게 됩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 안이라는 의인의 업(땅)에서 악인의 권세에 붙들리지 않고 성령께 붙들려 존재하는 것이 큰 복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복의 세계로 바라보며 찬송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러한 흔들리지 않는 구원에 붙들어 놓기 위해 두르시고 지키시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년 7월 1일(수)

제목: 울며 씨를 뿌리는 자(시 126:1-6) 찬송 183(새 283)

1절의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는 내용을 보면 이 시편의 배경이 유다가 포로 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기쁨을 노래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로 말합니다(2,3절).

하지만 큰 일을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신 일로만 국한한다면 포로 되게 하신 일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포로 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유다를 포로 되게 하시고, 다시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신 일에서 하나님의 큰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바로 그 일이 우리에게 웃음과 기쁨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렘 33:3에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큰 일은 렘 33:8에서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게 범하여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죄사하심입니다.

유다는 죄 사함의 기쁨과 즐거움을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오히려 죄를 선포하는 선지자를 배척하고 핍박하였습니다.
죄를 몰랐기 때문에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유다를 망하게 하시고 포로라는 비참한 자리에까지 밀어 넣으심으로 죽음이라는 절망을 경험하게 하시고 그 속에서 죄를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죄가 곧 자신들의 실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죄를 사하신다는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라’는 말씀은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자기 죄로 인한 애통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을 알게 되고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년 7월 2일(목)

제목: 인생의 가치(시 127:1-5) 찬송 470(새 413)

1절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의 수고로 살아갑니다.
세상의 구조는 자기의 수고 없이는 먹고 살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집을 세우는 자의 수고를 말하면서도 여호와가 세우지 않으면 그 수고가 헛되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수고하지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지 못하다면 그 모든 수고가 헛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는 말씀도 파수꾼의 깨어 있는 수고가 힘이 아니라 여호와가 진정한 힘이 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수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열심히 수고할 때 많은 것을 보상을 받을 수 있고 그것으로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수고해도 나아지는 것이 없을 때 세상을 탓하며 실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러한 삶의 방식이 헛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단순히 잘살든 못살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물론 잘사는 것도 못사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잘살고 못사는 것이 인생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생이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가 함께 하지 않는가에 의해 인생의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모두 수고의 떡을 먹으며 삽니다.
하지만 그 수고의 떡에 대해 늘 불만입니다.
수고에 비해 너무 적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많아진다고 만족할까요?
많아져도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여전히 불만 속에 살 뿐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것도 하나님으로 인해 만족함과 감사의 인생을 알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은혜이며 복입니다.
떡이 아닌 하나님만이 안식이 되심을 아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년 7월3일(금)

제목: 복 있는 자(시 128:1-6) 찬송 489(새 429)

성경에서 복에 대해 말할 때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앙하는 모든 성도가 동일하게 누리는 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합니다.
시편 1편에서도 복 있는 자를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것은 복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언급되는 것이지 세상의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외는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외한다고 할 때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이 세상과 우리의 모든 삶을 통치하고 계신다는 것을 전제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의 존재, 우리의 존재, 우주 만물의 활동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복이 있는 것으로 말합니다.
즉 ‘여호와를 경외하면 복을 받는다’가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곧 복이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여호와를 경외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멸망과 저주 아래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경외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에 의한 은혜이며 하나님의 생명에 속한 자가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게 된 것이 곧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도에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삶이 이끌림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 복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2-4절에 말해줍니다.

수고한 대로 먹고 가정에 아내와 자녀가 있는 것이 복과 형통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사실은 우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베푸신 것임을 알고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할 수 있는 자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이며 이러한 자가 복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년 7월 4일(토)

제목: 여호와의 의(시 129:1-8) 찬송 465(새 407)

신앙은 자신을 보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행함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나 같은 자를 붙드시고 진리의 길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129편은 이스라엘이 어려움에 처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어려움으로 인한 고통의 정도가 어떠했는가는 “밭 가는 자가 내 등에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3절)는 내용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4,5절에서 하나님이 악인의 줄을 끊으시고 시온을 미워하는 자를 물러가게 하신 근거를 여호와의 의로우심에 두고 있습니다.
악인의 줄을 끊으시고 물러가게 하신 것이 이스라엘의 신앙적 행동이나 열심과 상관없이 여호와께서 의로우시기 때문에 행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악인의 줄은 이스라엘의 자유를 박탈하고 악인이 의도한 대로 끌고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줄을 끊으셨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을 악인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신 것을 의미하고 그것을 여호와의 의로움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죄에 붙들려 고통 가운데서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기 백성을 자유하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의입니다.
악한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하신 것입니다.

시온을 미워하는 자가 수치를 당하는 것 역시 같은 의미입니다.
시온에 거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아래 있는 백성들입니다.
그들을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멸시하는 것이 됩니다.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이 억압하지만 그들도 결국은 지붕의 풀과 같이 자라기 전에 말라버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이 힘으로 여기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앞에서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의를 믿고 신뢰하는 성도는 땅의 것을 신뢰하지 않게 되는 것이고 자신을 악인의 권세로부터 건지시고 자유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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