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가정예배 2020년 7월 20일(월) - 25일(토)

작성자
김 재형
작성일
2020-07-19 15:51
조회
30
가정예배 2020년 7월 20일(월)

제목: 피난처(시 142:1-7) 찬송 455(새 370)

본문 2절에서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고 말하는 것이나 3절에서 “저희가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고 말하는 내용을 보면 다윗이 큰 어려움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어려움에 빠진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자신의 한 몸 의탁할 피난처도 없고, 자신을 돌봐줄 그 누구도 없는 외로움의 처지에 있습니다(4절).
자신의 힘으로 헤어날 수 없는 어려움과 함께 누구 하나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거나 도와주지도 않는 외로움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5절).

우리도 어렵고 힘들 때면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막연하고 맹목적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셔서 어렵고 힘든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만 가득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에게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가 이미 자신이 가는 모든 길을 알고 계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3절).

하나님이 나의 길을 알고 계신다는 것은 나에게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허락하심 아래서 주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랑이시고 인자함과 자비하심입니다.
따라서 만약 성도가 하나님의 뜻이 선하다는 것을 믿고, 현재의 길이 하나님에 의해서 펼쳐지는 것들이고 하나님이 아신다는 믿음에 있다면 어떤 일이 주어지든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를 찾지도 구하지도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자신을 도와줄 누구도 없는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만 찾을 뿐입니다.
즉 세상의 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힘이시고 도움이시라는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생존 세계에서 나의 분깃이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년 7월 21일(화)

제목: 주의 진실과 의로 응답하소서(시 143:1-12) 찬송 332(새 274)

1절에서 다윗은 기도의 응답을 구하면서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기도 응답의 근거가 자신의 진실과 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의 진실과 의에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의 모든 인생은 불의와 죄밖에 없습니다(2절).
다윗은 그러한 자기의 실상을 알기에 주의 진실과 의로 응답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달려 죽어가면서 주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기억하여 달라고 구하는 강도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죄 없이 죽으시는 주님의 의로우심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직함이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6절)는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유일한 희망, 즉 심판에서 건짐 받고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주의 진실하심과 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한 자가 주를 사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환난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아침에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환난에서 자신이 다닐 길을 알게 하는 것은 오직 말씀 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으며 주의 뜻을 행하는 길로 가기를 원한 것입니다(10절).
다윗은 이것이 자신의 영혼이 환난에서 건짐 받는 길임을 안 것입니다.

다윗은 이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의 이름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자신의 불의함을 알고 주를 사모하게 되면 자신을 위해 살고자 하는 것 자체가 불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사는 길은 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의 진실하심과 의라는 것을 알기에 온전히 주를 사모하는 자로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년 7월 22일(수)

제목: 새 노래(시 144:1-15) 찬송 49(새 482)

하나님이 반석이시고 요새시고 산성이시고 방패가 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는 든든한 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반석이신 여호와를 말하면서 싸우게 하시고 치게(전쟁하게) 하신다고 합니다(1절).
왜 반석이신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전쟁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부딪힌 일이 전쟁인 것처럼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을 살게 될 때 겪게 되는 것이 전쟁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서 이방인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공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을 쫓아내며 그들의 풍습을 따르지 않아야 할 자로 부름 받은 것처럼 성도 또한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가야 할 존재로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보이는 세상의 것으로 자기 힘을 삼고자 하는 세상에서 여호와가 나의 반석이라는 고백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성도라면 충돌과 함께 전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늘 싸우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보이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싸워야 하는데 이것이 우리의 힘으로 승리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닙니다.
그 사실을 절감하는 자들은 여호와만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전쟁을 생각하지 않고 여호와를 찾는다면 세상에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이루기 위해 자기 삶의 문제로만 찾을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고 부르셔서 자기 백성 삼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복이 있는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헛것 같고 그림자 같은 인생인 우리를 하나님이 생각하셔서 무한하신 사랑과 인자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를 아는 자들이 세상에서 새 노래로 노래하는 자들입니다.
새 노래는 하나님에 의해서 새롭게 된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예배 2020년 7월 23일(목)

제목: 나의 왕(시 145:1-21) 찬송 21

1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왕’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다윗 자신이 왕이면서도 하나님을 왕으로 일컫는 것은 자신의 왕 됨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이스라엘을 자신이 통치하는 자신의 나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로 여기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된 이스라엘의 왕은 인간이 감히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신 분이시고 은혜와 자비와 인자로 자기 백성을 다스리시며 긍휼을 베푸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알았던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고 말합니다.
주의 나라는 주께서 통치하시는 세계를 말합니다.
다윗은 이 나라를 소망하며 하나님이 주가 되어 통치하고 계심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의 통치만이 생명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의 나라가 영원하다는 것이 곧 그것을 의미합니다.
주의 나라가 영원하다는 것은 그 나라에 속한 백성 또한 영원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세상이 영원하든 영원하지 않든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심은 자신이 사는 날 동안 평안과 복을 누리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이‘사는 날 동안’으로 끝나지 않음을 압니다.
사는 날이 끝나면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그 때에 심판에 처해지지 않고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영광을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모든 은혜와 자비와 인자로 다스리며 자기 백성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왕 되심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통치에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연결된 마음으로 존재하는 성도입니다.
이러한 성도가 왕이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가정예배 2020년 7월 24일(금)

제목: 할렐루야(시 146:1-10) 찬송 40(새 79)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할 때 반드시 언급되어야 하는 것이 여호와가 누구시고 우리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6절에서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라고 말합니다.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신다는 것은 영원토록 진실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에는 공평하지 못하고 부당한 일로 여겨진다 해도 하나님이 통치에는 불의가 없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믿는 자는 비록 자신에게 실패와 고난에 임한다 해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에서 범사에 감사하게 되고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7-9절까지를 보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말합니다.
압박당하는 자를 해방하시고 소경의 눈을 여셔서 생명의 진리를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 일을 예수님께서 오셔서 다 이루신 것입니다(눅 4:18-19).

그리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신다고 말합니다(9절).
악인이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는 풍족한 삶을 산다고 해도 그 길은 이미 생명으로 향하지 않은 굽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의지하는 성도는 악인의 잠시 동안의 형통을 형통으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3,4절)라고 말합니다.
힘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라고 해서 의지할 대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결국 호흡이 끊어지고 흙으로 돌아갈 존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5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으로 도움을 삼을 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될 때 우리는 ‘할렐루야’라고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년 7월 25일(토)

제목: 할렐루야(시 147:1-20) 찬송 35(새 298)

147편은 바벨론 포로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절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를 모으신다’는 것은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벌하신 하나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자들을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모으시는 것은 그들이 변화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고통을 겪으면서 죄를 범하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인으로 변화되었기에 다시 모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대로 인자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행하심을 알게 된 백성이라면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자신들을 모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감사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흩어짐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를 깨닫게 하시고 다시 돌아오게 하셔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스라엘로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6절에서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를 붙드신다’고 합니다.
겸손은 마음의 낮아짐 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한 자를 다시 모으시고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다만 크신 은혜를 찬양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낮아진 마음이며 겸손입니다.

말씀으로 자연을 다스리신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을 보이셨다고 합니다(19절).
말씀을 보이신 것과 보이지 않은 것의 차이는 죄를 아는 것에 있습니다.
말씀을 보이심으로 죄를 알게 되고, 죄를 알게 됨으로 하나님의 인자와 은혜와 사랑에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일하심에 감사하고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은 말씀에 의해 주관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우리에게 말씀을 보이셨습니다.
말씀으로 인해 죄를 깨닫고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게 된 것이 넘치는 복입니다.
성도는 이 은혜 안에 있기에 어떤 삶에서도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찬양할 뿐입니다.
이 믿음 위에 굳건히 세워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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