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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2020년 7월 27일(월) - 8월 1일(토)

작성자
김 재형
작성일
2020-07-26 17:49
조회
27
가정예배 2020년 7월 27일(월)

제목: 할렐루야(시 148:1-14) 찬송 21

148편은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주제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언급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는 점입니다.

저자는 하늘에 속한 것, 땅에 속한 것, 그리고 인간 모두를 언급하며 찬양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온 우주만물을 모두 모은다고 해도 찬양 받을 분은 하나님 한분뿐임을 의미하는 것이면서 또한 하나님 외의 누구도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5절에 보면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고 말합니다.
만물이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만물이 여호와의 명령, 즉 말씀에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이 찬양의 이유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존재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수성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지금의 나보다 더 나아지고 싶은 욕망이 감사와 찬송에서 벗어나게 하고 대신 불만과 불평을 안고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 것이 우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한계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우연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의해 존재하고 있기에 존재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떤 삶이 주어지든 그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감사하며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는 그런 믿음의 사람으로 새롭게 되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우리의 찬양을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변함없는 당신의 뜻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일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풍조가 어떠할지라도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존재하고 있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 산다는 것을 절대 잊으면 안됩니다.


가정예배 2020년 7월 28일(화)

제목: 할렐루야(시 149:1-9) 찬송 49(새 482)

149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하면서 찬양의 이유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으셨고, 그들의 왕이시라는 것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시면 이스라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존재할 가치조차 없는 나를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게 부르신 것만으로도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신앙은 가장 존귀하고 가치 있는 것에 대해 눈이 열리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의 사람은 가장 존귀하고 가치 있는 것을 바라보고 소망하고 그것을 마음에 두고 있기에 여러 가지의 복을 추구하지 않게 됩니다.
세상의 복과 하늘의 복을 동일하게 여기지 않게 됩니다.
하늘의 복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면 그만큼 보이는 세상의 것은 무가치 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현재의 삶 또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소유의 많고 적음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로 인해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성도라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라는 것 자체로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항상 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감사와 찬양이 됩니다.
도무지 하나님께 기쁨의 대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 같은 자를 기뻐하시는 그 은혜가 크고 놀랍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도의 찬양은 새 노래입니다(1절).
세상은 부를 수 없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든 분명한 것은 새 노래를 부르는 새로운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백성이고 영원한 영광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평생토록 감사와 찬송의 근거와 힘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예배 2020년 7월 29일(수)

제목: 할렐루야(시 150:1-6) 찬송 25

시편은 ‘할렐루야’로 마칩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분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있음을 말합니다.
사 43:21절에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성도의 본분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찬양은 단지 노래를 부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증거한다는 것은 언어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삶 전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성도의 삶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나타날 때 그것이 곧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찌어다”라고 말합니다.
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시는 거룩한 곳이며 성소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흘러나와 백성들의 죄가 용서되었습니다.
이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은 성소에서 행해지는 하나님의 일이 찬양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온전히 증거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용서로 인해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시편의 마지막 구절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호흡이 있다는 것은 단지 숨을 쉰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새 생명을 얻은 성도는 하나님의 권능과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것이 본분인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우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힘들고 어려운 형편이 전부가 아니라 그 내면에 자리한 하나님의 뜻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행하심으로 인해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가정예배 2020년 7월 30일(목)

제목: 묻는 삶(삿 1:1-7) 찬송 460(새 301)

이스라엘을 인도하던 여호수아도 죽고 이제 눈에 보이는 지도자가 없어진 이스라엘입니다.
그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1절)’라고 묻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유다가 올라가라’고 하시고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다’고 하십니다.

‘붙였다’는 말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유다가 올라가라’ 하시고 ‘붙였다’는 말씀을 하신 것은 가나안 거민(세상)과의 싸움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세상나라와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고 또 이스라엘 스스로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목표를 이루어 내는 사람을 능력있는 사람으로 대우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을 세상은 나약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낮은 자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런 자들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5-7절에서 아도니 베섹의 엄지가락 끊음을 말합니다.
전쟁에서 포로된 자의 엄지가락을 끊어버리는 것은 그로 하여금 수치를 느끼게 하고 또 도망을 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아도니 베섹의 엄지가락을 끊은 것은 그가 한때는 인간 중에 강한 자였을 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도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떠한 자인지를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 스스로를 책임지고 사는 삶이 아닌 하나님께 묻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묻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책임지는 인생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는 나약해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붙이신 인생을 사는 교회의 삶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정예배 2020년 7월 31일(금)

제목: 무엇에 끌립니까?(삿 1:16-21) 찬송 429(새 379)

1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라고 말합니다.
유다가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를 가지고 있어서 두려워서 쫓아낼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28절에는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쫓아내지 않은 이유가 사역을 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기에 쫓아내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철병거도 유다에게 도움이 되기에 남겨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쫓아내지 ‘못했다’고 말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철병거라는 가치 있고 유익해 보이는 것에 굴복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동기를 사용하던 유다에게 철기는 가나안에서의 삶에 도움이 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가나안 거민을 쫓아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철병거라고 하는 것에 더 가치를 둔 것입니다.
그래서 쫓아내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에 의해서 가나안에 들어왔음을 안다면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가나안을 모두 쫓아내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너희들의 도움인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한 것입니다.
앞으로 가나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철병거는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철병거를 쫓아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민 33:55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끌립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여러분의 마음이 끌리기를 원합니다.


가정예배 2020년 8월 1일(토)

제목: 길갈(삿 2:1-5) 찬송 496(새 439)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사자가 보김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 왔다고 합니다.
길갈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후에 할례 의식을 행한 곳입니다.

요단강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건넜습니다.
즉 언약궤의 피의 은혜가 그들을 가나안땅에 들어오게 한 것입니다.
그러한 길갈에서 할례를 행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새롭게 태어난 자이므로 육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만 의지하고 살아가라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이 길갈에 나타났던 여호와의 사자가 다시 보김에 나타났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요단강을 건널 수 없던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 누구의 은혜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김에서의 이스라엘은 어떤 모습입니까?
길갈에서의 은혜는 다 잊어버린 상태입니다.
가나안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고 그들의 단을 헐라고 하셨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거민을 쫓아내지 아니하면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가시가 되고 그들의 신이 올무가 될 것이라는 말씀(3절)은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이미 경고로 주어졌던 말씀입니다.
이제 경고하신 대로 되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잘살고 싶은 마음에 가나안 거민을 남겨 두었는데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이 방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간섭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간섭하신다는 것은 우리의 소원대로 살도록 놔두지 않는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간섭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세상을 버리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까워하는 세상 것이 오히려 우리들에게 올무와 가시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속상하고 눈물 흘릴 수도 있지만 그것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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