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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2022년 4월 21일(목)

가정예배
작성자
김 재형
작성일
2022-04-20 17:11
조회
1005
제목: 애통함(눅 16:19-31) 찬송 337(새 279)

본문 이야기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차별했던가에 주안점을 두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하신 의도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 중 누가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인가?’하는 것입니다.
만약 죽음 이후의 결과를 알지 못하고 이들이 생존해 있을 때 만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부자가 복 받은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세상이 생각하는 복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천국과 지옥은 우리의 기준에 따라 결정되지 않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에 따라 결정될 뿐이며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은 우리의 기준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특이한 것은 거지의 이름을 나사로로 언급하는 점입니다.
나사로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입니다.
세상의 시각에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는 거지가 아니라 부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사로란 이름을 통해서 저주받은 것처럼 보이는 거지를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로 부각시키면서 죽음 이후의 각기 다른 결과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부자는 고통 중에서 아브라함에게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24절)라고 애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자가 생존해 있을 때 그에게 없었던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긍휼히 여기사’라는 애통함입니다.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자신들에게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천국 간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천국은 그들을 거부합니다.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사람, 즉 아브라함의 언약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불쌍히 여김 받아야 함을 알고 긍휼을 구하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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