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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2021년 6월 30일(수)

가정예배
작성자
김 재형
작성일
2021-06-29 18:03
조회
1427
제목: 얼마나 되겠삽나이까(요 6:1-15) 찬송 82(새 95)

예수님이 큰 무리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라는 질문을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빌립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6절).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7절)는 말을 합니다.
자신이 소유한 것을 가지고 일을 해결할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한 것입니다.
안드레가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발견하고 예수님께 말하면서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사고방식에서 하는 말인 것입니다.

오천 명이란 숫자에 비해서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필요한 현실에서 오병이어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처럼 모두가 무시하는 오병이어로 오천 명의 사람을 배부르게 먹이시고 열 두 광주리가 남게 하셨습니다.
그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장차 생명의 떡으로서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실 것이지만 세상은 그것을 하찮게 여길 것임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는 말을 하지만 세상의 현실을 보고 그 해결에 급급해할 때 십자가의 은혜는 무시되고 반면에 세상의 것을 필요로 하고 목말라 할 것입니다.
세상의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아니라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능력의 예수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예수를 따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을 거부하십니다.
결코 그것을 믿음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표적은 결코 우리들에게 주어질 육신의 유익을 말해주기 위함이 아님을 다시 한번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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