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2021년 11월 11일(목)
가정예배
작성자
김 재형
작성일
2021-11-10 17:04
조회
1252
제목: 가인의 행위(요일 3:11-12) 찬송 141(새 143)
형제 사랑은 낮아진 마음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낮아지는 문제는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우리 스스로 통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낮아짐은 예수님에 대한 인식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내가 그분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자각할 때 자연히 마음이 낮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형제 사랑은 성도가 실천해야 할 덕목의 한 부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을 12절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인의 행위는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와 제물을 받고 자신의 것은 받지 않으신 것으로 인해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12절에서 가인이 아우를 죽인 연고를 ‘가인의 행위는 악하고 아벨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고 말합니다.
의로운 자 앞에서 악한 자가 취해야 할 태도는 자신의 악함을 깨닫는 것이어야 합니다.
의로우신 예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악함을 깨닫는 것이 예수님을 만난 자의 태도인 것처럼 가인은 자신이 참으로 악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인은 자신의 악함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 불평을 하면서 미움과 시기로 아우를 살해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가인같이 하지 말라’는 말은 미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의로움 앞에서 자신의 악함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 불평하고 분노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타인과 자기를 비교하며 삽니다.
하지만 예수님 앞에서 우리는 악한 자일뿐입니다.
미움과 시기가 무엇으로부터 나오는가를 명확히 봐야 합니다.
나를 낮추고 형제를 높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악함을 봄으로 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낮추시기 위해 힘써 일하시는 것입니다.
형제 사랑은 낮아진 마음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낮아지는 문제는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우리 스스로 통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낮아짐은 예수님에 대한 인식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내가 그분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자각할 때 자연히 마음이 낮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형제 사랑은 성도가 실천해야 할 덕목의 한 부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을 12절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인의 행위는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와 제물을 받고 자신의 것은 받지 않으신 것으로 인해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12절에서 가인이 아우를 죽인 연고를 ‘가인의 행위는 악하고 아벨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고 말합니다.
의로운 자 앞에서 악한 자가 취해야 할 태도는 자신의 악함을 깨닫는 것이어야 합니다.
의로우신 예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악함을 깨닫는 것이 예수님을 만난 자의 태도인 것처럼 가인은 자신이 참으로 악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인은 자신의 악함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 불평을 하면서 미움과 시기로 아우를 살해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가인같이 하지 말라’는 말은 미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의로움 앞에서 자신의 악함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 불평하고 분노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타인과 자기를 비교하며 삽니다.
하지만 예수님 앞에서 우리는 악한 자일뿐입니다.
미움과 시기가 무엇으로부터 나오는가를 명확히 봐야 합니다.
나를 낮추고 형제를 높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악함을 봄으로 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낮추시기 위해 힘써 일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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