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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2020년 11월 5일(목)

가정예배
작성자
김 재형
작성일
2020-11-04 17:46
조회
1860
제목: 미약과 창대(욥 8:1-7) 찬송 493(새 436)

빌닷도 엘리바스와 동일하게 욥이 겪고 있는 재앙의 원인이 죄라고 생각합니다.
빌닷의 율법적 사고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욥의 말을 광풍과 같다고 표현하며 공의를 굽게 하지 않는 하나님이 욥에게 재앙을 내리신 것으로 간주하는 것과(2,3절) 자녀들의 죽음을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결과로 보는 것(4절)에서 드러납니다.

복은 처음부터 인간의 조건과 무관합니다.
저주는 물론 인간의 죄로 인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주의 존재에게서 선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복의 조건을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선언이고, 따라서 복은 인간과 무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빌닷이 말한 7절의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도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왜곡과 인간이 꿈꾸는 헛된 희망 등이 담겨 있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현재가 미약하다는 불만과 함께 창대해지기를 바라는 헛된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창 12:2절에 보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겠다고 하시는데 여기에는 아브라함이 지켜야 할 조건이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약속일 뿐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이미 그 이름이 창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는 약속은 예수님의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도의 창대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미약한 상태에서 창대해져가는 과정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세계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로 인해서 율법에 매이지 않는 완성의 세계에 속해 있음을 알았기에 그리스도가 곧 자신의 창대함이 된다는 것을 믿으며 그리스도로 인해 감사하게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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