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2021년 4월 9일(금)
가정예배
작성자
김 재형
작성일
2021-04-08 18:12
조회
1794
제목: 세상이 감당치 못함(히 11:35-38) 찬송 466(새 408)
본문에 보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회피하고자 하는 길을 갔던 사람들입니다.
각자 다른 환경과 형편에서 삶을 살았지만 이들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난 것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믿음이 하나라는 것을 이런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그들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으로 살게 하였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믿음에 의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모습으로 증거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믿음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닥친 고난과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길 앞에 놓여 있는 바위를 치워주는 것이 아니라 바위에 부딪혀 아프고 힘들어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알고 그대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이러한 현실로 이끌어 가실까요?
그것은 세상이 아니라 하늘의 더 좋은 것이 있음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는 고난에서 주님의 아픔과 고난을 엿보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하늘의 좋은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부활의 세계 밖에 있는 모든 것이 저주에 불과할 뿐임을 알기에 더 좋은 부활 때문에 악형도 고난도 구차스럽게 면하려고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이 성도에게 더 좋은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고, 어떤 고난도 구차히 면해보고자 하지 않는 길을 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 때문에 고난 속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인간의 뜻이 실현되는 현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현장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본문에 보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회피하고자 하는 길을 갔던 사람들입니다.
각자 다른 환경과 형편에서 삶을 살았지만 이들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난 것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믿음이 하나라는 것을 이런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그들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으로 살게 하였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믿음에 의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모습으로 증거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믿음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닥친 고난과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길 앞에 놓여 있는 바위를 치워주는 것이 아니라 바위에 부딪혀 아프고 힘들어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알고 그대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이러한 현실로 이끌어 가실까요?
그것은 세상이 아니라 하늘의 더 좋은 것이 있음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는 고난에서 주님의 아픔과 고난을 엿보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하늘의 좋은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부활의 세계 밖에 있는 모든 것이 저주에 불과할 뿐임을 알기에 더 좋은 부활 때문에 악형도 고난도 구차스럽게 면하려고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이 성도에게 더 좋은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고, 어떤 고난도 구차히 면해보고자 하지 않는 길을 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 때문에 고난 속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인간의 뜻이 실현되는 현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현장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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