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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2021년 9월 29일(수)

가정예배
작성자
김 재형
작성일
2021-09-28 17:07
조회
1230
제목: 어찌하여 우느냐(요 20:11-18) 찬송 342(새 543)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의 이 물음은 마리아가 울 필요가 전혀 없는데 울고 있는 것에 대해 책망의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성경적으로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시신이 없다는 것이 울 일은 아닙니다.
보통 사람에게 시신이 사라진 일은 시신을 도둑맞은 경우가 되겠지만 예수님의 경우는 부활하셨기 때문에 시신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신이 없다는 것은 곧 부활하심을 의미하는 것인데 마리아가 울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전혀 생각지를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무지하여 울고 있는 마리아를 찾아오셔서 ‘어찌하여 우느냐’라고 물으신 것은 마리아에게나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물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마리아를 찾으셨다는 것은 희망이며 힘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리아를 예수님이 붙드시고 책임지심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운다는 것은 절망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힘으로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때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이란 내 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힘을 믿는 것입니다.
울고 있는 연약한 마리아를 찾아오셔서 그를 붙들어 하나님 백성답게 만들어 가시는 것처럼 우리에게 역시 찾아오셔서 우리를 붙드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시는 도우심을 베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잊어서는 안될 것은, 우리의 신앙은 어느 한 순간도 예수님의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지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리아를 찾아오셔서 ‘어찌하여 우느냐’라고 물으신 것은, 마리아의 울음이 더 이상 울음으로 지속되지 않도록 도우시기 위해서입니다.
울음을 기쁨으로 바꾸시기 위해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도우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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