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2022년 2월 28일(월)
가정예배
작성자
김 재형
작성일
2022-02-27 14:57
조회
1050
제목: 인간의 본심(눅 9:46-48) 찬송 486(새 368)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고 말씀을 직접 들으면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의 모든 것을 직접 보고 들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의 수준은 일반 사람과는 달라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보게 되는 제자들의 수준은 ‘그동안 그들이 예수님께 듣고 보고 배운 것이 뭘까?’라는 의구심이 들게 할 정도로 형편없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크냐 라는 문제로 변론이 일어났다는 것은 제자들이 서로 높고 낮음을 견주며 경쟁하는 관계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같은 제자들의 부정적인 모습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들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자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자신임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크냐고 변론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무시의 대상이었던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은 사람을 크고 작은 자로 나누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항상 나 자신이 더 나은 자리에 있고 싶어 하는 악한 본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이런 영접이 가능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즉 예수의 이름으로 어린 아이를 영접할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의 이름’은 예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는 것처럼 능력적인 문제입니다.
즉 인간의 본심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주의 능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어린 아이를 영접하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님으로만 구원된다는 비밀을 깨닫게 됨으로써 자신은 큰 자로 내세울 수 있는 존재가 못됨을 알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깨달은 성도에게 이루어진 기적의 사건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고 말씀을 직접 들으면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의 모든 것을 직접 보고 들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의 수준은 일반 사람과는 달라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보게 되는 제자들의 수준은 ‘그동안 그들이 예수님께 듣고 보고 배운 것이 뭘까?’라는 의구심이 들게 할 정도로 형편없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크냐 라는 문제로 변론이 일어났다는 것은 제자들이 서로 높고 낮음을 견주며 경쟁하는 관계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같은 제자들의 부정적인 모습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들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자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자신임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크냐고 변론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무시의 대상이었던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은 사람을 크고 작은 자로 나누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항상 나 자신이 더 나은 자리에 있고 싶어 하는 악한 본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이런 영접이 가능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즉 예수의 이름으로 어린 아이를 영접할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의 이름’은 예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는 것처럼 능력적인 문제입니다.
즉 인간의 본심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주의 능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어린 아이를 영접하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님으로만 구원된다는 비밀을 깨닫게 됨으로써 자신은 큰 자로 내세울 수 있는 존재가 못됨을 알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깨달은 성도에게 이루어진 기적의 사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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