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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2021년 1월 6일(수)

가정예배
작성자
김 재형
작성일
2021-01-05 17:54
조회
1842
제목: 엘리후의 공의(욥 34:1-15) 찬송 278(새 220)

2-4절의 엘리후의 말을 보면 자신을 의로운 자로 고집하는 욥의 불의를 증명함으로써 욥으로 하여금 자신의 불의를 인정하게 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엘리후에게 있어서 공의는 ‘옳지 못한 것을 지적하여 바르게 고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엘리후는 죄에 대한 징벌을 공의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어두움 가운데 존재하고 있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예수님이 오심으로 드러난 것은 세상 자체가 죄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죄를 죄로 드러내시고 죄라고 하는 인간의 본래 자리를 보게 하시는 것이 공의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요 8장에 보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예수께 끌고 와서 모세의 율법에는 돌로 치라고 명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는가를 묻는 내용이 있습니다.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따르면 여인은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떠나게 됩니다.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공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는 서로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 판단 받아야 할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나 엘리후에게는 자기에 대한 이러한 시각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나는 고난과 무관하므로 욥의 상황을 판단하고 조언할 수 있다’는 판단자의 위치에서 욥의 고난을 해석하고 욥을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고난 받지 않고 있다 하여 고난 받는 자보다 더 낫다거나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됨을 지적하고 책망하여 그의 말과 행실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바라보며 감사하게 되는 것이 공의가 우리에게 실현된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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