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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2022년 2월 9일(수)

가정예배
작성자
김 재형
작성일
2022-02-08 17:51
조회
1014
제목: 많이 탕감 받은 자(눅 7:36-50) 찬송 331(새 273)

예수님이 한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갔을 때 한 여자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씻으며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붓습니다.

예수님은 이해할 수 없는 여인의 행동을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47절).
그리고 50절에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는 말씀을 보면 여인의 믿음은 곧 사랑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 중에 하나가 ‘믿음’과 ‘사랑’입니다.
그런데 대개 보면 이 믿음과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가 세상의 상식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믿음과 사랑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성과 휴머니즘에 의한 것을 믿음과 사랑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에게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와 오십 데나리온을 빚진 자의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을 때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고 물으시자 바리새인은 많이 탕감 받은 자라고 답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가 곧 죄 지은 여인이고, 오십 데나리온 빚진 자는 바리새인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여인보다 바리새인의 죄가 적다는 뜻이 아니라 죄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죄를 가볍게 여겼지만 여인은 크게 여겼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바리새인과 여인의 행동의 차이의 본질적인 이유는 바리새인은 자신의 죄를 알지 못했고 여인은 자기의 죄를 깊이 그리고 크게 여긴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죄 용서입니다.
이 사랑의 세계는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참여할 수 없는 먼 세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인처럼 자신의 죄가 크다는 것을 알고 예수께 나올 때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이 우리를 평안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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