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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2020년 12월 23일(수)

가정예배
작성자
김 재형
작성일
2020-12-22 21:39
조회
1909
제목: 능히 측량하랴(욥 26:5-14) 찬송 40(새 79)

욥과 욥의 친구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라면 할 수 없는 지식적인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욥이 14절에서 “이런 것은 그 행사의 시작점이요 우리가 그에게 대하여 들은 것도 심히 세미한 소리뿐이니라 그 큰 능력의 우뢰야 누가 능히 측량하랴”고 말합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행하시는 일을 깨닫고 분별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발도 11장 17절에서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고 말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오묘함을 측량할 수 없고 전능자인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면 당연히 욥의 고난도 알 수 없습니다.
고난을 겪는 본인은 물론이고 다른 누구라 해도 고난의 내막이나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잘 아는 것처럼 판단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인가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처럼 말합니다(11:13-17).
이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의’ 입니다.
자기의 의가 있기에 욥의 재앙을 죄로 판단하고 의가 있는 자의 입장에서 욥을 충고하는 것이 이들의 잘못됨입니다.
말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모르는 무지한 존재인 것입니다.

욥은 자신의 고난에 대해 모르겠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욥에게도 자기 의가 있다는 하나의 증거일 뿐입니다.
자기 의가 있기에 자신을 저주받을 자로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난이 주어진 이유를 알지 못해 답답해하는 것입니다.

욥은 자신이 잘해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에 대해 의아해한 것입니다.
저주 아래 있는 인간됨을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에 대해서도 의아해할 수가 없습니다.
의아해할 것은 저주 아래 있는 자에게 주어진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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